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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 지진과 액상화

by @*ㅔqs! 2022.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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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 지진과 액상화

후쿠이 지진의 진원은 후쿠이 평야 20km 깊이의 얕은 지진으로서, 현청 소재지인 후쿠이 시를 강타한 직하형 지진이었습니다. 지진 피해는 후쿠이 평야와 그 주변에서만 일어났는데도 사망자 3,769 명, 전파가옥 3,614, 소실 가옥 3,851 , 반파 가옥 1,181 채라는 큰 피해를 기록하였습니다. 사망자 3,769명은 간토 지진 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가장 많습니다. 다른 대지진의 경우 사망자가 많아도  천 수백 명이므로 매그니튜드 7.1의 후쿠이 지진은 거대 지진보다 훨씬 작은 지진임에도 불구하고 두배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진입니다.

 

 

 

후쿠이 평야는 퇴적층 때문에 지하에서 발생한 암반의 어긋남, 즉 단층이 지표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진 후 실시된 측량 조사에 의해 남북 방향으로 25km 길이의 단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 잠재 단층은 후쿠이 시와 모리오카 시 사이를 지나며, 동쪽에서는 북쪽 방향으로 최대 67m , 서쪽에서는 남쪽 방향으로 최대 2m 어긋난 좌측 변위 단층이었습니다. 또한 동쪽에서는 최대 41cm 융기, 서쪽에서는 최대   93cm 침강이라는 수직 방향의 변동도 확인되었습니다. 논이나 하천 부지, 매립지 같은 연약 지반 지역에서는 지진 발생 시 지면에서 모래나 진흙이 분출하는 현상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반이 지진으로 흔들린 결과 토사와 물이 분리되는 액상화라는 현상으로 여러 가지 피해를 가져옵니다. 액상화 현상이 확인된 대표적인 지진은 1948년 6월 28일 발생한 후쿠이 지진입니다. 지진 발생 후 논으로 일하러 나간 주부가 돌아오지 않자 남편이 찾으러 갔습니다. 일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장소에 갔다니 논 한가운데 흰 수건이 보여서, 다가가 살펴보니 주부가 수건을 머리 쓴 채 논 속으로 빨려 들어가 질식해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액상화가 아니라 갈라진 땅이 닫힌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연약지반이 지진에 약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지진 후 조사를 통하여 모든 가옥이 전파된 지역이 상당히 많은 것이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당시까지 상요하고 있던 진도 계급의 최대인 [진도 6] 지진 피해를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중앙기상대는 이듬해 1949년 진도 계급을 조정하여 <진도 7>을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진도 7- 격진은 가옥의 파괴가 30 % 이상에 달하며, 산사태, 땅 갈라짐, 단층 등이 생기는 것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진도 6까지는 진동을 감지하면 진도를 곧 파악할 수 있었지만 진도 7은 지진 후 현지 조사를 실시하여 진도 7의 지역이 있었다고라고 판정하는 것입니다. 단층선 위에서는 땅 갈라짐이 연속적으로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후쿠이 평야 도처에서 땅 갈라짐이 연속적으로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후쿠이 평야 도처에서 모래 분출 , 땅 갈라짐, 흙탕물 분출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들 현상을 보더라도 퇴적층이라는 연약 지반이 큰 지진 피해를 일으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쿠이 지진의 유감 여진은 며칠 후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쿄대학지구물리학과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전자식 지진계를 사용하여 여진 관측을 실시하였습니다. 전자식 지진계에 의해 당시까지 사용했던 기계식 지진계보다 수천 배 이상의 고배율로 관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유감 지진이 멈춘 뒤에도 매그니튜드 1 정도의 신체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많은 미소 여진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밝혀냈습니다.  군발지진은 화산지대에서 잘 나타납니다. 화산지대는 지하 구조가 복잡하고 암반에 작은 균열이 많아 힘이 가해지면 이 균열이 부서지며 군발 지진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화산이 많은 규슈와 홋카이도에서 도 군발지진이 관측되고 있으며, 특히 시즈오카 현 이즈 반도 주변은 화산 지대의 대표적인 예로 종종 군발 지진이 일어납니다. 1930년 2~5월에 일어난 군발 지진은 과학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이토 앞바다의 사가미 만에 진원이 있었으며, 하루 수십 회의 지진활동이 한 달간 이어지다 4월 하순에 일단 잠잠해졌으나 5월이 되어 반달 간 하루 최대 100회를 넘는 지진이 이어졌습니다. 이 지진에서 특징적인 것은  조석 간만과 지진 발생 사이에서 명료한 관계가 확인되었습니다. 지진 발생 횟수 시간적 분포를 보면 썰물시에 빈발하고 밀물시에 잠잠해지는 뚜렷한 경향이 확인되었습니다. 지진은 처음 미나카미 산 주변에서 발생하였으나 점차 주변으로 확대되어 1967년에는 북동 - 남서 방향으로 34km , 북서- 남동 방향으로 18km의 범위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습니다. 1966년 4월 5일과 1967년 2월 3일에는 매그니튜드 5.4의 지진도 일어났습니다. 이 두 지진이 활동 중에  발생한 최대 지진이며, 이외에는 대부분 매그니튜드 5 미만의 작은 지진이 빈발하였습니다. 특히 1966년 3~5월과 8~9월에는 지진 활동이 가장 활발해져 하루 지진 발생수가 200회를 넘었으며, 600회를 기록한 날도 있었습니다. 매그니튜드가 작은 지진이라고 해도 진원이 얕아 인근에서는 땅울림을 동반한 지진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지진의 진동을 하루에 수백 번 감지하는 날이  몇 개월간 이어졌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즈 반도 북쪽에 위치하는 하코네 산, 남동 방향의 이즈나나 섬 주변에서도 군발 지진이 간혹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들 지진은 모두 매그니 튜드가 작고, 지진에 의한 피해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에게는 꺼림칙한 그래서 안심할 수 없는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1965년 8월부터  1967년 6월까지 거의 2년간 현재의 나가노 시 마쓰시로의 미나카미 산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지진 관측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곳에 세계 표준 지진계를 설치하여 공동 관측을 시작한 직후 8월 4일부터  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 말까지 기록된 유감 지진 횟수는 62,821회로서 그 가운데 진도 5 - 9회,  진도 4 -  50회 발생하였고 피해를 동반한 지진은 51회로서 전파 가옥 10채, 반파 가옥 4채를 발생시켰습니다. 산사태와 암벽붕괴도 60곳에서 발생했지만, 주민들의 방재 노력으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화재도 발생하지 않은 지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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